리벨리온·사피온·퓨리오사AI, NPU로 엔비디아 GPU 시장독식 깨나
리벨리온, 싱가포르·프랑스·일본 등 국내외 투자사서 1650억 유치
[더스탁=김동진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AI반도체 팹리스 3총사(리벨리온·퓨리오사·사피온)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챗GPT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텔과 AMD 등 기존 반도체 업체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빅테크 기업들까지 AI 칩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높은 기술장벽 때문에 쉽사리 성과를 내지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엔비디아는 병렬연산에 강한 그래픽처리장치(GPU)의 특성을 AI연산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AI반도체 시장의 80~90%를 차지할 만큼 ‘절대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엔비디아의 GPU 철옹성을 깰 ‘다크호스’로 떠오른 대항마가 K-팹리스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GPU가 AI특화 반도체가 아니어서 범용 AI연산 외에는 성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전력소모가 많고 가격도 비싸다는 점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자동으로 결과를 개선하는 머신러닝에 특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연산효율은 높고, 전력소모는 적은 AI반도체로 개발하고 있다. 즉, GPU의 아성을 무너뜨릴 차세대 AI칩으로 NPU를 내세운 것이다.
이들 K-팹리스는 단순히 논문이나 시제품으로 기술적 가능성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본격적인 양산 체제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강자였던 한국이 새로운 AI반도체 시장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AI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인 ‘리벨리온(대표 박성현)’은 이날 KT클라우드와 신한벤처투자,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파빌리온 캐피탈, 프랑스 코렐리아 캐피탈, 일본 DG 다이와 벤처스 등 다수의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16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투자유치 과정에서 리벨리온은 88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탄생의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리벨리온은 2020년 6월 설립된 이후 누적투자유치액만 2800억원을 기록하게 됐다.
리벨리온은 2021년 금융 회사를 위한 NPU AI반도체 ‘아이온’을 출시했고, 2023년에는 데이터센터용 AI반도체 ‘아톰’을 내놓았다, 특히 아톰은 지난해 5월 KT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됐으며 올해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리벨리온은 글로벌 반도체 벤치마크(성능 평가) 대회의 일부 분야에서 엔비디아에 앞서는 성과를 낼 정도로 기술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리벨리온은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IBM과 생성형 AI 데이터센터 고도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거대언어모델(LLM)을 겨냥한 차세대 AI반도체 ‘리벨’을 개발하는 등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성규 리벨리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투자유치와 관련 “대규모 투자 유치는 미국과 일본 등 세계로 리벨리온의 무대를 확장하고, 계획 중인 국내외 비즈니스와 차세대 제품 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데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리벨리온 외에도 국내 AI반도체 팹리스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사피온(대표 류수정)’은 지난해 8월말 다수의 투자사로부터 5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6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사피온은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스퀘어가 공동출자해 2022년 1월 미국에 설립한 AI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중순 열린 ‘SK 테크 서밋 2023’을 통해 기존 제품 대비 4배 이상 성능을 향상시킨 추론용 NPU ‘X330’을 선보인데 이어, 올해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또다른 팹리스 ‘퓨리오사AI(대표 백준호)’도 시리즈C 투자유치를 진행 중인데, 지난해에만 730억원을 끌어모았으며, 이를 2000억원대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의 누적투자유치액은 1610억원에 달한다. 퓨리오사AI는 특히 지난해 AI의 일종인 컴퓨터 비전을 위한 반도체 ‘워보이’ 를 개발했는데, 이 제품은 AI 반도체 기술력 검증 국제대회인 MLPerf에서 엔비디아의 텐서 코어 GPU T4와 A2보다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퓨리오사AI는 지난해 말 대만의 주요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 에이수스(ASUS)와 계약을 맺고, 올해부터 워보이를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중에서도 AI반도체는 글로벌 시장규모가 2023년 553억달러에서 연평균 19.9% 성장해 오는 2026년엔 861억달러(약 11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