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도넛 체인 ‘크리스피 크림’이 IPO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 2016년 글로벌 투자 회사 JAB 홀딩이 13.5억 달러(약 1조5,187억원)에 회사를 인수하면서 비상장기업으로 전환된 지 5년 만이다.
크리스피 크림은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를 위한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신고서는 비공개 형식으로 제출됐으며, 티커명 등도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회사 측은 “상장 규모, 공모가 밴드 등이 현재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SEC의 검토가 끝나는 대로 상장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크리스피 크림의 상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공모가 21달러에 나스닥에 300만 주를 상장했으며, 이듬해엔 뉴욕증시로 둥지를 옮겼다. 초반에는 공모가를 밑도는 거래가 지속되면서 주가가 부진했지만, 매출과 이익이 급증하는 등 호재가 이어지며 2003년에는 주가가 49.74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사업 투자로 인해 발생한 비용 및 부채와 함께 몇몇 지점의 실적 급감소까지 겹치면서 크리스피크림은 SEC에 파산보호(Chapter 11)를 신청했다. 더불어 부채 규모가 회계 장부에 정확하게 기재되지 않았다는 사유 등으로 당국의 회계 조사를 피할 수 없었고, 주주들은 소송에 휘말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에 저탄수화물 열풍이 불면서 2005년 10.7억 달러(약 1조 2,034억원)에 이르렀던 회사의 연간 판매액은 2009년 4.7억 달러(약 5,287억원)까지 감소했다. 이에 대해 가파른 성장이 오히려 걸림돌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시장 분석가는 “그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소비자는 ‘신선하고 뜨거운 도넛’보다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마트 혹은 주유소의 ‘별로 신선하지 못한 가공 식품’을 연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크리스피 크림은 곧 터닝포인트를 찾았다. 웰빙과 관련된 사회문제가 아닌 내부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회사는 2006년 CEO로 새로 영입된 대릴 브루스터(Daryl Brewster)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내부 변화에 주력했다. 당시 CEO였던 브루스터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과 소통 개선 등 기본적인 변화를 주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핵심 해결책은 해외 확장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회사는 SEC 조사로 인해 재정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까지 국내 지점은 늘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해외 사업 확장은 가능했다. 따라서 그들은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새로운 가맹점을 늘려갔으며 이는 회사가 다시 국내 프랜차이징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과로 이어졌다. 크리스피 크림은 2009년을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를 보였으며, 2019년 약 8억 8,700만 달러(약 9,976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크리스피 크림은 현재까지 해외 사업 확장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6년 25개 이상의 국가에서 824개의 매장을 운영했던 회사는 현재 33개 국가에 걸쳐 약 1,4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피 크림이 현재 IPO를 진행하는 데에는 올해 기업공개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IPO 시장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 시점에 상장하는 것이 회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분석가는 더스탁에 “2020년 기업 공개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전년대비 150% 증가한 1,740억 달러(약195조6,978억원)”라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 흐름을 따라 2021년에 성공적인 상장을 이루기를 희망하고 있다. 코인베이스, 엔데버 등 큰 기업들이 올해 이미 상장을 마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피 크림의 사업 확장을 위한 움직임에도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하반기에 뉴욕 타임스퀘어에 새로운 매장을 개장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매장은 공간이 126.5평(4,500제곱피트)에 달하는 덕분에 규모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단독 메뉴인 ‘빅 애플’ 도넛을 선보이기도 했다. 회사는 최근 백신 접종을 맞은 사람들에게 2021년 마지막 날까지 무료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제공하겠다고 광고하는 등 브랜드 인지도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첫 상장에 실패했던 경험과 코로나19로 인해 식음료 사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크리스피 크림의 재도전에는 우려 섞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특히 유동인구에 의존하는 도심에 위치한 식음료 가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미국 커피 체인 사업들이 매출 하락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