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의 재탕 가처분도 '시세조종' 의혹
②고려아연 자사주매입 중지 신청…주가 진정되자 장내매수
[더스탁=이경주 기자] “누구든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를 할 목적이나 그 시세의 변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풍문의 유포, 위계(僞計)의 사용, 폭행 또는 협박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자본시장법 제178조 제 2항의 내용이자 고려아연이 영풍·MBK연합을 올 11월 14일 금융감독원에 시세조종 행위로 두 번째로 고발한 법적 근거다.
영풍·MBK연합이 공개매수를 시작한 이후 고려아연은 가격을 올려 맞불 공개매수(자사주)를 추진한 바 있다. 이에 영풍·MBK연합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불법이라며 법원에 절차중지를 위한 가처분을 신청하는 한편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전도 펼쳤다.
이 여론전이 ‘시세 변동을 도모할 목적의 풍문 유포’라는 것이 고려아연 주장의 핵심이다. 고려아연의 맞불 공개매수가 무산되면 불붙던 주가흐름도 식게 된다. 실제 영풍·MBK연합의 여론전으로 당시 주가가 진정됐다. 그런데 결과는 ‘기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주가진정 국면을 이용해 영풍·MBK연합이 장내매수를 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이득도 취했다.
이 역시 금감원이 임시주주총회 전 조사를 통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 영풍·MBK연합 여론전으로 주가 억제...2차 가처분 기각되자 6% 급등
영풍·MBK연합이 공개매수가를 주당 66만원으로 정해 매수를 시작한 날은 9월 13일이다. 10월 4일까지 22일간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이에 대응해 고려아연은 맞불 전략으로 소각 목적의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검토했다.
이를 감지한 영풍·MBK연합이 먼저 움직였다. 공개매수 시작일(13일)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하는 가처분(이하 1차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분쟁으로 주가가 치솟은 와중에 회삿돈을 자사주매입에 활용하는 것은 '배임'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소각은 주주환원책이라며 반박했다.
법원은 10월 2일 '기각' 결정을 내리며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영풍·MBK연합은 이날 바로 같은 내용으로 가처분(이하 2차 가처분)을 재신청했다. 법원은 이에 대한 심문기일을 10월 18일에 진행한 이후 같은 달 21일 2차 가처분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두 번의 기각이 진행되는 사이 영풍·MBK연합이 여론전을 통해 이득을 취했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1차 가처분이 기각된 10월 2일 바로 주당 83만원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일반투자자 입장에선 주가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이벤트다.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한축이 보다 비싼 가격으로 경쟁매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가 상승이 수반됐고 영풍·MBK연합도 이틀 뒤인 10월 4일 공개매수가를 고려아연 수준(83만원)으로 올렸다. 이에 고려아연은 10월 11일 공개매수가를 주당 89만원으로 더 올려 대응했다.
그리고 2차 가처분에 대한 심문기일(10월 18일)이 다가오던 중 문제의 여론전이 펼쳐졌다. 진정서에 따르면 영풍·MBK연합은 2차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고려아연의 주당 89만원 공개매수가 중단될 수 있다는 입장을 언론과 시장에 지속 전달했다.
진정서에 첨부자료로 A언론사가 “MBK파트너스는 당시 법원의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려아연 경영진이 진행하는 89만원 공개매수가 중단될 수 있다고 시장에 홍보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제출했다.
B언론사가 보도한 “시장에서는 가처분 결과를 기다리며 ‘인용’ 가능성에 따른 리스크로 주가 상승이 제한됐고, 이를 틈 타 저가 매수에 나서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내용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실제 여론전으로 주가상승이 제한됐다. 심문기일인 10월 18일(금요일) 고려아연 종가가 82만4000원이었는데, 다음 영업일인 10월 21일(월요일)에 2차 가처분 기각 결정과 함께 종가가 87만4000원으로 전 거래일 종가 대비 6.43% 상승했다. 리스크(가처분 인용)가 해소되자 주가가 급등한 셈이다.
◇ 2차 심문기일에 수상한 장내매수...'기각' 가능성 인지?
문제는 MBK의 특수목적법인(SPC)인 한국투자기업홀딩스가 2차 가처분 심문기일(10월18일)에 장내매수로 고려아연 주식 2만주를 취득한 것이다. 여론전으로 주가상승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라 보다 저렴히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특히 고려아연은 영풍·MBK연합이 심문기일에 ‘기각’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문기일엔 양측이 각자의 논리를 약 한 시간 가량 법원에서 주장하고 법원은 이에 대한 대략적인 소견을 전해준다. 그런데 당시 법원이 인용과 거리가 먼 발언을 했다는 전언이다.
고려아연은 C언론사가 “일각에서는 (MBK의 장내매입이) 심문기일 당일 사법부의 분위기를 파악해 ‘기각’ 판결을 예상한 조치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며 “(중략) 최종 위법 판결은 본안 소송에서 따지라는 뉘앙스의 말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보도한 사실을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즉 기각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가처분 ‘인용’으로 여론전을 펼쳐 경영권 분쟁을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려했고, 장내매수로 실질적 이득까지 챙겼다는 것이 고려아연 주장이다. 더불어 부정한 수단이나 풍문으로 시세를 조정하려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본다.
고려아연은 진정서에 “피진정인(영풍·MBK연합)들이 2차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에 알림으로써 고려아연 주가 상승을 억제한 다음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고려아연 주식을 저가에 매수한 행위는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봐야한다”며 “이에 피진정인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진정한다”고 기재했다.